기원전 6세기 그리스 사모스섬에서 두 무리의 인부가 산 반대편에서 굴을 파 들어갔고, 두 굴은 산속에서 실제로 만났습니다. 완성된 터널의 길이는 1,036m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방향을 어떻게 맞췄는지를 알려주는 당대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과입니다. 두 굴이 만난 지점에서 바닥 높이는 약 60cm 차이가 났습니다. 1km를 파고 들어가 생긴 높이 차이로는 약 0.058%에 해당합니다.
이 글은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이 공사가 요구한 정밀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각도로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방향을 정한 방법에 관한 여러 설명이 각각 어떤 근거에 기대고 있는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침반도, 측량기기도, 지형도도 없던 때였습니다.
헤로도토스는 무엇을 적었고 무엇을 적지 않았을까
이 터널을 언급한 가장 이른 기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3권 60절입니다. 공사보다 약 한 세기 뒤에 쓰인 문장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은 이 굴을 ὄρυγμα κάτωθεν ἀρξάμενον, ἀμφίστομον이라고 부릅니다. 아래에서 시작하는, 양쪽에 입구가 있는 굴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산 높이를 150 오르귀이아, 굴의 길이를 7 스타디온, 높이와 너비를 각각 8 푸스로 적고, 그 아래에 깊이 20 페키스·너비 3 푸스의 또 다른 굴이 있어 그리로 물이 관을 타고 도시로 온다고 적습니다. 마지막에 설계자를 메가라 사람 에우팔리노스, 나우스트로포스의 아들이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문에 없는 내용입니다.
| 구분 | 원문이 적은 것 | 원문이 적지 않은 것 |
|---|---|---|
| 형태 | 양쪽에 입구가 있는 굴 | 두 팀이 동시에 팠다는 서술 |
| 치수 | 길이·높이·너비·수로 깊이의 수치 | 어떤 자로 어떻게 쟀는지 |
| 사람 | 설계자의 이름과 출신 | 그가 쓴 방법이나 도구 |
| 결과 | 물이 관을 타고 도시로 온다 | 두 굴이 얼마나 잘 맞았는지 |
즉 양쪽에서 팠다는 것까지가 헤로도토스가 보증하는 범위입니다. 두 팀이 각각 파 들어가 지하에서 만났다는 판단은 그 뒤의 발굴과 측량에서 나옵니다.
헤로도토스의 숫자를 실측과 맞춰보면
원문의 수치가 실제와 얼마나 맞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의 숫자가 실측값과 같아지려면 단위 하나가 얼마여야 하는지 역산하는 것입니다.
실측 기준은 이렇습니다. 길이 1,036m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정보, 지구물리 학술지의 조사 논문, 미국토목학회 자료,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발행한 자료에서 모두 확인됩니다. 미국토목학회는 3,400피트로 적는데 환산하면 1,036.3m로 사실상 같은 값입니다. 단면 너비는 학술지 논문이 거의 1.8m로 적습니다. 아래 수로는 북쪽 끝에서 터널 바닥보다 약 3m 낮고 남쪽 끝에서는 9m 넘게 낮아집니다.
1 스타디온 = 1,036m ÷ 7 = 148.0m
1 푸스 = 1.8m ÷ 8 = 0.225m
1 페키스 = 9.0m ÷ 20 = 0.45m
| 항목 | 헤로도토스 | 확인된 실측 | 맞추려면 필요한 단위 값 |
|---|---|---|---|
| 굴의 길이 | 7 스타디온 | 1,036m | 1 스타디온 = 148.0m |
| 굴의 높이·너비 | 각각 8 푸스 | 약 1.8m | 1 푸스 = 0.225m |
| 아래 수로의 깊이 | 20 페키스 | 북쪽 약 3m, 남쪽 약 9m | 남쪽 기준 1 페키스 = 0.45m |
세 값은 서로 잘 맞물리지 않습니다. 하나의 자로 실측한 결과라면 세 단위가 일관된 비율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수로 깊이입니다. 원문은 전 구간에 걸쳐 20 페키스라고 적지만, 실제 수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깊어집니다. 헤로도토스는 아마 남쪽 입구 근처에서 본 값을 전체에 적용했을 것입니다.
고대의 스타디온과 푸스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값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나온 148.0m를 헤로도토스가 쓴 스타디온의 실제 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의 수치가 정밀 측량이 아니라 반올림된 어림값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자료끼리도 숫자가 갈리는 곳이 있다
역사 기록만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자료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 항목 | 지구물리 학술지 | 미국토목학회 | 캘리포니아공과대학 | 유네스코 | 대조 결과 |
|---|---|---|---|---|---|
| 길이 | 1,036m | 3,400피트 | 1,036m | 1,036m | 3,400피트는 1,036.3m. 사실상 일치 |
| 너비 | 거의 1.8m | 기록 없음 | 약 2m | 기록 없음 | 0.2m, 약 11% 차이 |
| 접합부 높이차 | 기록 없음 | 2피트 | 60cm | 기록 없음 | 2피트는 0.61m. 사실상 일치 |
| 수로 최대 깊이 | 기록 없음 | 30피트 | 9m 초과 | 기록 없음 | 30피트는 9.14m. 정합 |
길이와 높이 차이는 자료가 잘 맞고, 너비만 갈립니다. 이 글은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지의 1.8m를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만약 2m로 놓으면 뒤에 나오는 허용 각도가 조금 넉넉해지지만, 결론의 크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공사는 얼마나 정확해야 했을까
이제 본론입니다. 산 양쪽에서 각각 500m쯤 파 들어가는데 방향이 조금 틀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계산은 단순합니다.
횡방향 어긋남 = 굴착 길이 × tan(방향 오차)
굴착 길이를 500m로 놓고 계산하면 이렇게 됩니다.
| 방향 오차 | 한 팀만 틀렸을 때 | 두 팀이 반대로 틀렸을 때 |
|---|---|---|
| 0.1° | 0.87m | 1.75m |
| 0.2° | 1.75m | 3.49m |
| 0.5° | 4.36m | 8.73m |
| 1.0° | 8.73m | 17.46m |
| 2.0° | 17.46m | 34.92m |

굴의 너비는 약 1.8m입니다. 두 굴이 그냥 겹치려면 어긋남이 1.8m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역산하면 이렇습니다.
한 팀만 틀린 경우
tan θ < 1.8 ÷ 500 = 0.0036 → θ < 0.206° (약 12.4분)
두 팀이 반대로 틀린 경우
tan θ < 0.9 ÷ 500 = 0.0018 → θ < 0.103° (약 6.2분)
약 0.1도에서 0.2도. 각도로 치면 6분에서 12분입니다. 시계 초침이 1초 동안 도는 각도가 6도이니, 그 30분의 1 남짓입니다. 나침반도 없이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정밀도를 맞춰야 했다는 뜻입니다.
이 숫자는 다른 방향에서도 확인됩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는 어떤 측량 방식에서 2도의 누적 오차가 생기면 두 팀이 최소 30m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하는데, 위 표의 2도 행은 34.92m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오차가 여러 번 쌓일 때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만 쌓이지는 않습니다. 일부는 서로 상쇄됩니다. 그래서 누적 오차의 크기는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구분은 이 글의 판단이며, 인용한 자료의 주장은 아닙니다.
높이는 얼마나 잘 맞았을까
수평 방향보다 잘 맞은 쪽은 높이였습니다. 두 굴이 만난 지점에서 바닥 높이는 약 60cm 차이가 납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는 60센티미터로, 미국토목학회는 2피트로 적습니다. 서로 독립된 자료가 같은 값을 제시합니다.
기울기 = 0.6m ÷ 1,036m = 0.000579 = 약 0.058%
각도로는 arctan(0.000579) = 0.0332° = 약 2.0분
1km를 파고 들어가서 높이가 60cm 어긋났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의 수평 유지는 물을 담은 홈통 같은 단순한 도구로도 가능하지만, 산을 빙 둘러 긴 경로를 이동하며 오차를 이 수준으로 묶어 두려면 매 단계의 오차가 아주 작아야 합니다.
다만 이 60cm는 접합부 한 지점의 값입니다. 터널 전 구간의 수평 정밀도가 균일하게 이 수준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이 있습니다. 여러 요약 자료가 접합부의 연직 차이를 4cm나 64cm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 수치의 근거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근거가 확인되는 두 자료가 공통으로 제시하는 약 60cm를 계산에 사용합니다.
평행선 문제와 마지막 구간
방향 오차에는 성가신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두 직선이 정확히 평행하면 아무리 길게 파도 만나지 않습니다. 어긋남이 작을수록 좋기는 하지만, 완전히 평행해지는 것은 최악입니다. 서로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영원히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피하는 방법은 두 굴을 조금씩 서로를 향해 기울이는 것입니다. 남은 거리를 d, 방향의 불확실성을 u라고 하면 필요한 꺾임각은 이렇게 구합니다.
2 × d × tan φ > u
φ > arctan( u ÷ (2d) )
| 불확실성 | 남은 거리 50m | 남은 거리 100m | 남은 거리 200m |
|---|---|---|---|
| 1.8m | 1.03° | 0.52° | 0.26° |
| 4m | 2.29° | 1.15° | 0.57° |
| 8m | 4.57° | 2.29° | 1.15° |
생각보다 작은 각도로 충분합니다. 100m를 남기고 4m의 불확실성을 덮으려면 양쪽이 1.15°씩만 꺾으면 됩니다.
이 계산은 원리를 보여주는 가정입니다. 에우팔리노스가 이런 각도를 계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실제로 굴이 직선에서 벗어난 구간이 있다는 점은 미국토목학회 자료도 적고 있는데, 그 자료는 암질이 나쁜 곳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 한 곳에만 나오는 서술입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북쪽 팀은 접합점까지 절반쯤 왔을 때부터 지그재그로 방향을 여러 번 바꿨고, 마지막에는 급하게 꺾어 남쪽 굴에 닿았습니다. 두 팀이 서로의 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는 양쪽 모두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북쪽 팀이 왜 지그재그로 팠는지는 확정되지 않았고, 같은 자료가 평행하게 지나칠 위험을 피했을 가능성, 물이 새는 곳이나 무너지기 쉬운 암반을 돌아갔을 가능성을 나란히 제시합니다.
방향을 정한 방법에는 세 가지 설명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의 측량 방법을 직접 설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래 세 가지 설명은 모두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가 한자리에 정리한 현대의 재구성입니다. 따라서 세 설명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을 보여 주는 현대 해석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 구분 | 헤론식 직각 우회 | 산 위 통과 | 조준탑과 수평 도구 |
|---|---|---|---|
| 내용 | 산 둘레를 일정한 고도로 직각으로 돌아 두 변의 길이를 재고 빗변 방향을 구함 | 산 위로 말뚝을 일렬로 박아 눈으로 정렬하고 고도를 비교함 | 산마루에 7m 높이의 조준탑을 세워 북쪽 샘과 남쪽 해안을 한 직선에 놓음 |
| 제안 시점 | 헤론이 공사 5세기 뒤에 기록, 이후 오랫동안 정설 | 1958년과 1961년 현지 조사 뒤 제안 | 2004년 자료의 저자와 동료가 제안 |
| 강점 |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고 명확함 | 실제 지형의 통행 조건을 반영함 | 각도와 거리를 재지 않아 오차가 생길 지점이 적음 |
| 약점 | 필요한 측량 도구가 기원전 6세기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직각을 표시할 때마다 오차가 쌓임 | 말뚝 수백 개를 눈으로 맞추는 정확도가 낮고 고도 비교가 어려움 | 유물로 확인된 도구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을 보인 재구성임 |
세 번째 설명을 낸 쪽은 자기 방식의 총 정렬 오차를 50cm 미만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8m짜리 수평 도구로 약 2,200m를 275번에 나눠 이동할 때 회당 2mm의 오차가 쌓이면 약 55cm가 되는데, 이것이 실제 60cm와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어느 쪽도 유물이나 기록으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세 설명은 모두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를 보인 것이지 이렇게 했다를 증명한 것이 아닙니다.
자주 오해되는 것들
- 세계 최초의 터널이 아닙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는 기원전 700년경 예루살렘 아래에 만들어진 수로를 더 이른 양방향 굴착 사례로 들며, 사모스의 굴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라고 적습니다.
- 피타고라스는 관계가 없습니다. 같은 자료는 그가 사모스에서 태어났지만 성인기의 대부분을 섬 밖에서 보냈고, 설계에 관여했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명시합니다. 오늘날 터널이 있는 마을 이름이 피타고리오인 것은 후대의 명명입니다.
- 유클리드 기하학을 썼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원론》은 이 공사보다 약 200년 뒤에 쓰였습니다. 기하학적 원리를 활용했다는 것과 정리된 기하학 체계를 적용했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 산 높이 900피트는 현대 측량값이 아닙니다. 여러 자료가 이 수치를 쓰는데, 헤로도토스의 150 오르귀이아를 6배 한 값과 정확히 같습니다. 독립적으로 측정된 값으로 취급하기 어렵습니다.
- 공사 기간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미국토목학회는 기원전 530년경 착공해 약 10년이 걸렸고 520년에 완공됐다고 적습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는 8년에서 15년으로 추정 범위를 제시합니다. 6세기라는 큰 틀은 자료가 일치하지만 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 어느 수준의 근거인가
| 내용 | 근거 수준 |
|---|---|
| 양쪽에 입구가 있는 굴이었다 | 현존 문헌(헤로도토스 3.60) |
| 설계자는 메가라의 에우팔리노스다 | 현존 문헌 + 유네스코 등재 정보 |
| 길이 1,036m | 현대 조사, 네 자료 일치 |
| 석회암을 양쪽 끝에서 팠다 | 현대 조사, 세 자료 일치 |
| 단면 너비 약 1.8m | 학술지 자료. 다른 자료는 약 2m |
| 접합부 바닥 높이 차이 약 60cm | 현대 조사, 두 자료 일치 |
| 북쪽 굴의 지그재그와 마지막 급회전 | 한 자료의 서술 |
| 정렬 방법 가설 3종 | 한 자료가 정리한 현대 가설 |
| 최초가 아니라는 판단 | 한 자료의 서술 |
| 공사 기간 | 확정 불가. 자료마다 다름 |
| 이 글의 각도·꺾임각 계산 | 조건을 밝힌 가정 계산 |
자주 묻는 질문
두 팀이 정말 각각 파 들어갔나요?
헤로도토스의 원문은 양쪽에 입구가 있다고만 적습니다. 양방향 굴착이라는 판단은 현대 조사에서 나옵니다. 지구물리 학술지 논문과 미국토목학회 자료 모두 양쪽 끝에서 파 들어간 굴로 기술하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자료는 접합부에서 바닥 높이가 어긋나고 굴이 급하게 꺾여 있다는 점을 결정적 증거로 듭니다.
나침반이 없었는데 어떻게 방향을 유지했을까요?
굴 안에서 방향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뒤쪽에 표식을 두고 그 연장선을 보며 파면 직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는 처음에 어느 방향으로 시작할지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산 반대편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세 가지 가설은 모두 이 첫 방향을 정하는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바닥이 수평이면 물은 어떻게 흘렀나요?
터널 바닥은 거의 수평입니다. 물은 터널 바닥이 아니라 그 옆에 따로 판 경사진 수로를 따라 흘렀습니다. 미국토목학회 자료는 이 수로의 경사를 0.36%로 적습니다. 터널을 처음부터 기울여 파지 않은 이유로는, 경사진 굴을 파면 굴착 중에 위쪽 끝에 지하수가 고이는 문제가 지적됩니다.
지금도 원래 상태 그대로인가요?
전부는 아닙니다. 지구물리 학술지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전체 중 약 240m 구간에는 고졸기와 로마 시대에 덧댄 벽이 있고, 지표투과레이더 조사에서 그 두께가 평균 0.3~0.5m로 측정됐습니다. 무너지거나 내려앉은 구간을 보강한 흔적입니다.
이 터널은 얼마나 오래 쓰였나요?
미국토목학회 자료는 약 1,200년 동안 도시에 물을 공급했다고 적습니다. 이 시설은 1992년 인근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7년에는 국제 역사 토목 랜드마크로 지정됐습니다.
핵심 정리
에우팔리노스 터널이 인상적인 이유는 오차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차가 있었는데도 두 굴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계산해 보면 이 공사는 각 팀에 대략 0.1도에서 0.2도 수준의 방향 정밀도를 요구했습니다. 높이 쪽은 1km에 60cm, 약 0.06%로 맞췄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간에서는 정밀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평행선 문제를 방향 조정으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 정밀도를 어떤 방법으로 확보했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세 가지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만 모두 현대의 재구성이며, 확인한 범위에서는 한 자료가 이 가설들을 함께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인이 특정 기하학 방법으로 정확히 계산했다”고 단정하기보다, 방법은 확정할 수 없지만 실제 결과가 남아 있고 그 결과가 요구한 정밀도는 계산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현재 자료에 더 잘 맞습니다.
참고 자료
- Furman University, Dramaturg Editions, Herodotus, Histories 3.60: 그리스어 본문에서 양쪽에 입구가 있는 굴, 7 스타디온, 8 푸스, 20 페키스, 설계자 이름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Pythagoreion and Heraion of Samos”: 기원전 6세기, 길이 1,036m, 설계자 정보, 1992년 등재
- G. N. Tsokas 외, “Investigating behind the lining of the Tunnel of Eupalinus in Samos (Greece) using ERT and GPR”, Near Surface Geophysics 13(6), 2015: 초록에서 수로 전체 2.5km, 터널 1,036m, 너비 거의 1.8m, 석회암 양방향 굴착, 라이닝 약 240m와 두께 0.3~0.5m
- 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Tunnel of Eupalinos”: 3,400피트, 접합부 2피트, 수로 경사 0.36%, 수평 굴착 이유, 착공·완공 연도, 사용 기간과 지정 연도
- Tom M. Apostol,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Engineering & Science, “The Tunnel of Samos” (2004): 접합부 60cm, 북쪽 굴의 방향 변경, 정렬 가설 3종, 최초성과 피타고라스 관련 서술, 공사 기간 추정



